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겨우 찾은 아버지 유골 모실 곳이 없네요"

기록하는 사람 2009. 7. 1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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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유족회 강병현(59) 회장은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동안 아버지가 학살당한 것이다. 그는 지난 6월 20일 마산유족회 창립대회 자리에서 이렇게 털어놓기도 했다.

"나는 유복자입니다. 세상에 나오니까,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가정마다 다 아버지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만 없더라고요. 지난 60년간 공산당이 싫습니다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제 나이 60입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이제 아무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강 회장의 아버지처럼 1950년 7월 국군과 경찰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학살된 사람은 경남 진주에서만 1200여 명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올해 초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했고, 당시 살해되어 암매장된 유해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일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한국국제대학 뒷산 법륜골에서 마침내 앙상한 유골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59년동안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통한을 품고 묻혀 있던 희생자의 유해들이었다. 진주지역 학살 희생자 유해는 지난 2004년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도 163구가 발굴된 바 있다.

"아버지 유골 안고 혼자서라도 도청·시청 쳐들어가겠다"

강 회장은 진주 문산읍 상문리에서 발굴된 민간인학살 유골에 대해 "어차피 DNA 감식으로 일일이 가족관계를 확인하긴 어려우므로 여기서 나온 유골이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련 글 : 학살 암매장 유골, 발굴해도 갈 곳이 없다

1950년 유복자로 태어난 강병현 진주유족회장.

-발굴된 유해를 다른 지역에 보낼 수 없다고 결의한 배경은 뭔가?
△60년 동안 구천을 떠돌던 원혼들이다. 이제야 유족들의 품에 안기게 되었는데, 또 다시 타향 객지들 떠돌게 할 순 없다. 가까이 모셔두고 후손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그러나 당장 경남도내에는 안치할 곳이 없지 않은가?
△부당한 국가권력에 의해 불법으로 희생된 우리 국민이며 경남도민, 진주시민이다. 마땅히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모공원을 조성해 안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충북대에 임대해서 쓰고 있는 임시안치시설도 어차피 2011년까지 한시적이다. 그 뒤에는 대책이 없다. 뿐만 아니라 내년 4월이면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체돼버릴 가능성도 높다. 우리 지역에서 영구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또다시 유골 상태로 떠돌게 된다. 자식된 도리로 그렇게 둘 순 없다.

-추모공원을 조성한다면 후보지는 있나?
△진주시 명석면 일대에 적당한 터를 제안하는 사람도 있고, 폐교를 활용하자는 제안도 있다.

-경남도와 진주시가 끝까지 외면하면 어쩔 것인가?
△나 혼자서라도 유골을 가슴에 안고 진주시와 경남도청에 쳐들어 갈 생각을 하고 있다. 다른 유족들도 같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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