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선덕여왕' 죽방거사 등장의 사실감

김훤주 2009. 7. 7. 09:32
반응형

1. 약방의 감초 구실을 하는 죽방

<선덕여왕> 6회분인지 7회분인지에서 '죽방거사'가 나옵니다. 천명과 덕만이 국선 문노를 만나기 위해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성주(城主)로 있는 만노성으로 갑니다.

여기서 덕만이 문노가 어디 있는지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죽방거사'를 만납니다. '죽방거사'는 사기꾼으로 스님 행세를 합니다. MBC <선덕여왕> 홈페이지에 갔더니 '죽방'은 '1두품 평민'으로 '덕만의 난도'라고 소개돼 있었습니다.

'죽방'은 같은 '1두품 평민'으로 나중에 '덕만의 호위 무사'를 하게 되는 '고도'와 함께 다닙니다. 문노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척하면서 덕만에게서 금붙이를 받아 챙깁니다. 그러면서 김유신과 덕만을 잇고 덕만과 천명을 이어주는 구실도 합니다.

이렇게 죽 늘어놓고 보니 '죽방거사'의 드라마 속 구실이 꽤나 커다랗습니다. 이를테면 약방의 감초 같은 노릇이지요. 이야기의 전개를 좀더 매끄럽게 만듦과 동시에 좀더 감칠맛 나게 하는 배역입니다.

오늘 6일 밤에 한 13회분을 보니 여기서도 '죽방'과 '고도'는 천명공주-김유신의 낭도가 돼서 당시 귀한 음식이었던 가리반(카레)를 만드는 재료를 찾고 드라마에 웃음을 집어넣는 그런 노릇을 하고 있더군요.

2. 그 때는 평민 출신 스님이 없었다

그런데 이 죽방이라는 존재의 등장 과정이 당대와 걸맞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스님 행세를 한 점입니다. 신라에서 불교는 진흥왕 시절인 527년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공인을 받게 됩니다. 귀족들 반대를 물리치고 왕실이 불교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 뒤 불교는 빠른 속도로 퍼지지만 아무래도 귀족 중심일 뿐 평민까지 포괄하지는 않았습니다. 당대 스님들을 봐도 죄다 귀족입니다. 아마도 귀족이나 왕족이 아닌 평민은 마음대로 스님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불교는 경전에 대한 공부를 중심으로 하는, 그래서 평민이 접근하기는 어려운 교종(敎宗)입니다.

불교가 왕실과 귀족을 넘어 대중화되는 것은 원효(617~686)가 등장하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선덕여왕>에서 '죽방거사'는 덕만과 천명이 만 열다섯이 되는 때에 나타납니다. 진평왕이 즉위하는 해(579년) 어름에 이들이 태어났으니 594년이나 595년 즈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1두품 출신 평민이 스님 행세를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3. '나무아미타불' 하는 스님도 없었다

둘째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염불입니다. 죽방이 김유신 일행으로부터 물건을 훔쳤다가 들키자 훔친 물건을 덕만 주머니에 몰래 넣어 위기를 벗어납니다. 이 때 읊조리는 염불이 '나무 관세음보살'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종에서 주로 내세웠던 부처님은 석가모니불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은 현세를 담당하는 부처님입니다. 현세에서 영광을 누리는 이들(왕족을 비롯한 귀족)에게 딱 알맞은 부처님이시지요. 현세의 질서가 바로 불국(佛國-부처님 나라)의 질서가 되는 것입니다. <선덕여왕>에 나오는대로, 진평왕과 왕후는 백정(白淨)과 마야부인(摩耶夫人)을 자기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백정과 마야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현생 어버이의 이름입니다.


물론 이 얘기는 제 창작물이 아닙니다. 책을 읽거나 답사 따라다니며 주워들은 것들입니다. 원효는 정토사상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정토(淨土)는 '아미타불이 원행을 일으켜 성취한, 청정 광명이 무량해 마음이 편하고 즐거운 세계'라 합니다. 아미타불이 관장하는 정토는 서방(西方)에 있다고 상정됩니다. 그래서 서방 정토라고도 합니다.

무량수(無量壽) 또는 무량광(無量光)으로도 번역이 되는 아미타가 관장하는 세계는 현세가 아닌 내세(來世=저승 세계)입니다.(석가모니불과는 다르지요.) 원효의 깊은 철학이나 사상은 제가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원효는 불교 교리를 몰라도 지성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만 외우면 누구나 극락 왕생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아미타불이 먹혀들어간 배경은 비참한 현실에 있었습니다. 신라와 백제는 한강 유역 지배권을 두고 550년대 피튀기는 다툼에 들어갑니다.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할 때까지 이어집니다. 숱하게 전쟁이 일어났고 수많은 백성이 동원됐으며 죽거나 다친 사람 또한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내세를 관장하고 서방 정토를 이룩하신 아미타부처님과, 아픔을 어루만지고 상처를 치료해 주는 관세음보살에 대한 신앙이 당대에 크게 일어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왕실과 귀족으로서는 백성이 자신들에게 원망을 품는 대신 극락 왕생을 빌게 되면 현실에서 커다란 위협이 하나 사라지는 셈이니까 반겼을 테고요.

4. 조금만 더 신경썼으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은, 590년대 신라에서는 평민 출신이 스님이 되기도 어려웠으며 더 나아가 그런 스님이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을 했을 개연성 또한 높지 않다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역사 드라마에 이런 정도야 용납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시면 저는 사실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제작진이 조금만 더 당대를 깊이 공부하고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좀더 사실(史實)에 가까운 내용을 내보낼 수 있었으리라고 말할 뿐입니다. 사실, '약방의 감초'를 등장시키는 방법은, '스님 행세를 하는 사기꾼'말고도 무궁무진하지 않은가요?

김훤주

※관련 글 : 선덕여왕을 보던 중 거슬렸던 몇 가지

반응형